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리오케팔론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전개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4e5a8e5fc28223f298b4140c16dcf936.jpg|width=300]] 원정군은 곧 이코니온으로 향하는 계곡 사이로 놓인 관문도로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누가 봐도 매복하기 최적의 장소인 미리오케팔론의 도로는 위험해보였다. 여러 장교들이 도로를 통과하지 말고 북쪽의 필로밀리온으로 우회하여 대군의 우위를 살리자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나 고된 행군으로 군대의 사기가 떨어진 상태였고, 다양한 국가가 참여한 연합군이다 보니 다른 나라 군주의 의견도 신경써야 하는 상태였다. 결국 정치인으로서 빠른 원정 수행을 위해 황제는 강행돌파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단 매복이 우려되는 위험지대를 강행돌파하기로 한 원정군은 사전에 도로 양측의 산악지대를 정찰하고 룸군의 유격대를 쫓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기동력이 뛰어난 룸군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별다른 피해 없이 물러났고, 원정군은 어쩔수 없이 오후가 지나 진입을 시작하였다. 예상대로 선발대와 동로마군의 주력 중앙군이 통과중에 공격을 받았으나 어렵지 않게 격퇴해내었고, 이는 별다른 문제 없이 협곡을 지날 것이란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동맹군인 좌우익 부대와 근위대, 공성대, 보급부대들이 진입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좁은 지역에 수레나 우마 등 비전투 물자가 가득 들어찬 상태에서 전투를 강요받은 연합원정군은 주력 부대와 떨어진 상태로 지쳐있던 데다 매복이었던 까닭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사서에 의하면, 최고 지휘관인 마누일 1세는 넋이 나간 것처럼 이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최악의 시공간에 최악의 형태로 기습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고, 친정이 오랜만이었던 늙은 황제가 젊었을 적의 전투력과 판단력을 잃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피해는 점점 커져서 처남인 안티오키아의 보두앵과 동로마군의 주요 지휘관인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등이 전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주변의 질타로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황제는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하였고 곧 반격이 개시되었다. 반격에 적잖은 피해를 입은 룸군은 해가 완전히 지고난 저녁이 되어서야 물러났고, 그제서야 협곡을 통과한 황제는 진지구축 중이던 선도부대와 합류할 수 있었다. [[안드로니코스 콘토스테파노스]]가 지휘하던 후위대는 이미 전투가 거의 마무리 되었기에 별다른 피해 없이 본대와 합류했고, 재정비를 마친 이들은 밤중에 이어진 룸군의 공격 또한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그렇게 양측은 대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